2026-05-11

전담 재판부 두 배로 늘어…학폭위 심의 건수도 4년 만에 78% 급증
교육청 일원화 이후 교사 개입 길 막혀…가해·피해 양측 소통도 단절
여기,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A군과 B양이 있다. 학기 초 같은 반이 됐을 뿐,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고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사이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 끝 무렵, 다른 반 학생이 교과서를 빌리러 들어왔다. A군은 책을 건네기 위해 문쪽으로 던졌고, 힘이 모자랐던 탓에 책은 문까지 닿지 못한 채 중간에 앉아있던 B양 쪽으로 떨어졌다. A군은 곧장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B양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 후, A군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됐다. 특수상해 혐의 형사 고소도 뒤따랐다. B양의 부모는 A군이 일부러 딸을 향해 책을 던진 것으로 오해했다. "작년부터 우리 딸을 따돌리고 괴롭혔다"는 취지의 자료 수백 페이지를 학교와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결과는 무혐의·미조치였다. 다만 그사이 A군은 며칠간 등교하지 못했고, 학교에선 가해자로 소문이 났다. A군의 부모가 변호사 비용으로 쓴 돈은 수천여만원에 달했다.
누군가는 "그게 어떻게 학폭이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사례가 드물지 않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과 오해 하나하나가 학폭위와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거쳐 법원으로 흘러드는 단계에 한국 사회는 이미 들어섰다. 사법부 역시 그 흐름에 떠밀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폭 처리 과정에서 부모 경제력 격차 드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학폭 사건 전담 재판부를 기존 2곳에서 4곳으로 2배 늘렸다. 2026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학교폭력 조치 사항이 의무적으로 반영되면서 관련 소송이 한꺼번에 몰린 데 따른 조치다. 처분에 불복해 제기된 소송의 결론이 늦어질수록 학생부 기재와 입시 일정에 미치는 파급도 커지는 만큼, 법원도 처리 속도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서울 내 학폭 관련 소송은 2022년 51건에서 지난해 134건으로, 3년 사이 2.6배 늘어났다.
서울만의 현상도 아니다. 10일 시사저널 취재진이 교육부로부터 단독으로 입수한 학교폭력 심의 및 불복 절차 현황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 심의 건수는 2021학년도 1만5653건에서 2024학년도 2만7835건으로 4년 만에 77.8% 급증했다. 매년 학폭위에 1만 건 단위의 사안이 쌓이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한 갈등이 행정 절차로 흘러드는 양 자체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쌓이는 심의만큼 불복 건수도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가해학생이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는 875건에서 1261건으로, 행정소송은 107건에서 241건으로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불복의 구조다. 피해학생 측 청구(10→3건)와 견주면 가해학생 측의 불복(107→241건) 활용 빈도가 일관되게 높다. 특히 집행정지 신청은 2024학년도 가해학생이 583건을 낸 반면 피해학생은 11건에 그쳐 53배의 격차를 보였다.
집행정지는 학폭위 조치의 효력을 본안 판단 때까지 멈추는 절차다. 조치 집행이 미뤄지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시점이 늦춰지고, 입시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든다. 더구나 일부 대학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학폭 기록을 선제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입시에 민감한 고학년일수록 소송을 불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불복의 목적이 '처분 취소' 자체보다 '시간 벌기'에 가깝다는 진단이 현장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송 폭증의 이면에는 피해 신고 자체의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교육부의 '2025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학폭 피해를 호소한 학생은 2022년 5만3600명, 2024년 6만7700명, 2025년 8만1500명으로 매년 늘어났다. 3년 새 1.5배로 증가한 셈이다.
신고가 곧장 법정으로 이어지는 데는 달라진 요즘 학부모들의 태도도 한몫한다. 과거에는 아이들끼리의 장난으로 치부되던 사안조차 이제는 즉각적인 신고로 이어진다. '나만 당했다'는 주장과 함께 쌍방 과실에 가까운 사안까지 폭력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외동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나 남다른 애정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학교폭력 전문 신혜성 변호사(전직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과거에는 가해 학부모가 사과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내가 잘못한 만큼 너도 책임지라'는 식의 맞대응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대응이 표준화되면서 학폭 처리 과정은 경제적 격차가 드러나는 무대가 됐다. 소송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부모는 끝까지 다투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는 잘못이 없어도 결국 굴복하고 만다. 한 피해학생 학부모는 "심리상담 비용은 교육청에서 지원해줘 부담을 덜었지만, 소송 비용은 부담이 컸다. 학폭 피해 부모들끼리 돈을 모아 소송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피해 학부모조차 공동 출자 형태로 비용을 감당해야 제도권 안에서 싸울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특히 학폭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학부모는 당사자보다 더 조급해진다. 김대원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전 인천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는 "학폭 처분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선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남용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형사 사건이 결합된 경우엔 형사 사건의 결과를 본 뒤 학폭위를 늦게 열거나 다시 여는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심리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부모들로서는 속앓이만 깊어진다.
학폭 사건을 가까이서 본 법조인들이 짚는 더 근원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들어간다. 학교폭력 처리 제도 자체가 '극단적 가해자와 극단적 피해자'를 상정한 채 설계됐다는 것이다. 즉시 분리, 등교 정지, 접촉 금지 같은 강력한 조치는 진짜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신 변호사는 "허위 신고에 가까운 사안이나 매우 경미한 사건에까지 같은 조치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갈등이 도리어 커진다"고 지적한다.
그가 변론한 한 사건은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일부 학생이 한 친구에게 기분 나쁜 쪽지를 건넨 일이 학교폭력으로 인정됐는데, 신고 과정에서 과거 친구들끼리 "바보"라고 놀리던 장난까지 모두 끌려 나왔다. 결국 쪽지와 무관한 학생들까지 가해자로 묶여 신고됐고, 그중 일부는 '학교폭력 아님' 처분을 받고서야 비로소 절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 변호사는 "어렸을 때 친구끼리 치고받고 싸워도 그다음 날 화해하지 않느냐"며 "지금은 부모가 신고하는 순간 즉시 분리가 적용돼 사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소통이 끊긴 자리에서 인식의 골은 깊어진다. 가해자로 지목된 쪽은 사과하고 싶어도 길이 없고, 피해자로 신고한 쪽은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분이 쌓인다. 신 변호사는 "양쪽 부모가 모두 합리적인 사람인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도 "그런데도 연락처조차 공유되지 않으니, 단절된 시간 동안 상대 아이는 점점 더 나쁜 아이로 인식되어 간다"고 말했다.
분쟁의 1차 현장인 교실에서 교사의 자리도 좁아졌다. 학교폭력 사안이 교육청 소관으로 일원화된 이후 교사가 직접 개입할 여지는 거의 사라졌다. 신 변호사는 "선생님들 눈에는 누가 억울한지 다 보인다"면서도 "억울한 쪽을 편들면 상대 부모가 학교까지 찾아와 소리를 지르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결국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손을 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경미한 사건이 법정까지 가는 사례는, 가해·피해 어느 한쪽 부모 또는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봤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사에게 전가된다.
교육청 일원화 자체도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한때 학폭위는 개별 학교가 자체적으로 열었다. 학교장에게 책임이 귀속되다 보니 학교 차원의 자체 해결을 시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다만 위원회 구성과 소집 통지 등 절차를 비법률 전문가들이 진행하다 보니 절차적 하자가 빈발했다. 신 변호사는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만한 사안인데도 절차 하자 때문에 행정소송에서 결정이 깨지는 사례가 누적됐다"며 "학교 측에서는 같은 조치를 다시 내리는 데 부담을 느껴 더 가벼운 조치로 후퇴하는 악순환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원화는 부작용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그 결과 현장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잃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학교가 중심 잡고 중재와 화해 유도해야"
그럼에도 문제의 실마리는 학교가 쥐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학폭 대응이 법률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게 된 배경에는 다름 아닌 학교의 역할 방기가 자리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원 변호사는 "학폭 제도의 본래 목적은 가해학생의 선도와 분쟁 조정을 통해 이들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인데, 정작 현장에서는 행정적 부담을 이유로 이 책무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사안이 발생하면 사건을 축소·은폐하거나, 반대로 교육적 지도 없이 기계적으로 학폭위에 넘기는 경향이 짙다. 교실 안에서 이뤄져야 할 교육적 해결이 사라진 자리를, 메마른 행정 절차가 대신하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학생은 물론 가해학생도 결국은 학교가 품고 가르쳐야 할 보호 대상"이라며 학교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다. 이어 그는 "학교가 단순히 서류를 처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사안 초기부터 학교가 중심을 잡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의 중재와 화해를 유도하는 등 교육적 해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교의 역할이 절실한 이유는 분명하다. 폭력이 한 번 발생하면, 어떤 제도와 법률도 한 아이에게 새겨진 상처를 온전히 지워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부는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는 가정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과 무관하다.
단적인 예가 배우 권오중의 사연이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서 희귀질환을 앓는 아들의 학폭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목에 유리가 박히고 화장실을 기어 다녀야 했던 아들의 고통을 전하며 그는 오열했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지만, 피 흘리는 아들을 응급실로 데려가야 했던 아버지의 심경은 끝내 무너졌다.
그렇기에 학교폭력 전담 재판부 증원은 늘어나는 분쟁에 대한 사후적 대응에 가깝다. 전문가들이 짚는 문제도 분쟁이 법정에 닿기 이전 단계에 있다. 제도가 상정한 '극단적 학폭'과 현실의 갈등 사이의 간극, 심의 단계의 전문성 부재, 그리고 교실에서 끊긴 소통이 그것이다.
다시 그 교실로 돌아가본다. 쉬는 시간 끝 무렵 던진 책 한 권은, 학교에서라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났을 일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오갈 자리를 제도가 닫아버린 사이, 사건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거쳐 끝내 법원에 도착했다. 결국 법원의 일을 줄이는 길은 재판부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그 한마디가 오갈 자리를 학교에 되돌려주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MZ 부모들의 달라진 '학폭 대응법'…소송 전쟁에 교사들도 '백기'
학교 현장에서는 교실 내 중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토로가 잇따른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8년째 재직 중인 김아무개 교사(여·35)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학생들끼리는 화해하더라도 부모가 끝까지 사과를 거부하며 법적 대응을 고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요즘은 학폭위로 넘어가면 교사들이 손을 떼는 경우가 많다. 잘못 개입했다가 교사가 책임을 떠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증인 신분으로 진술해야 하는 부담에 더해, 학폭 처리 과정에서 거꾸로 교사가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는 사례까지 늘면서 교실 안 중재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사마저 손을 놓은 상황에서 학폭 피해 학부모들이 기댈 곳은 어디인가. 시사저널이 4월20일부터 4월30일 사이 만난 학폭 피해 자녀를 둔 학부모 3명의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현 단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학생부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교실 내 중재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이 매달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적 장치가 학생부 기재라는 의미다.
피해학생 부모들 "학생부에 기록 남기는 게 현실적 구제책"
초등생 자녀를 둔 A씨는 "학폭 주동자뿐 아니라 가담한 학생들 모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마음이 다친 건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냐"고 했다. 그는 "조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됐다. 아이가 모든 가해자와 양심 없는 학교 측을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을"이라며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비슷한 무력감은 다른 학부모들에게서도 이어졌다. 중학생 자녀를 둔 B씨는 "아이가 등교를 거부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입장은 달랐다"며 "제 아이가 폭행을 당하고 욕설까지 들었는데, 가해자는 1호 처분(서면 사과)을 받는 데 그쳤다. 이젠 제 아이를 위해 이사를 가려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C씨도 "폭행을 당한 제 아이에게 학교가 내린 처분은 서면 사과였다. 당한 사람만 억울한 세상"이라며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가족이 함께 무너지는 것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분"이라고 했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듣기 위해 취재진은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학부모 D씨도 만났다. D씨는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과 제 아이는 본래 절친한 사이였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학생들과 연대를 하더니 갑자기 제 아이를 가해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사에 제보를 하고, 언론을 상대로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며 "심지어 민사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겁박하고 있는데, 이는 정당한 절차인 학폭위를 통한 소명보다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D씨의 자녀와 피해학생들은 체육부 선후배 관계로 오랫동안 유대감을 쌓아온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향후 법정 공방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D씨는 현재 알려진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D씨의 자녀가 학교 내에서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D씨는 학교와 학폭위가 조사가 완료되기도 전에 이미 자녀를 범죄자 취급하며 결론을 정해 놓고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사건의 실체가 가려지기도 전에 학부모 간 감정의 골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당사자 간 화해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로 작동한다. 교육 현장도 답답함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김아무개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 모두 똑같은 제자이기에 마음이 편할 리 없지 않겠나"라면서도 "어느 한쪽의 입장을 두둔했다가는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이태준 기자 jun@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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